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증오와 광기로 둘러싸인 오즈에서 비쳐와 켈러의 관계는 예외적이고 독특하지만, 오즈 안이기 때문에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오즈의 다른 인물들은 서로 맞물리게 되면 한쪽은 피를 흘려야 결말이 나고 그 사이에는 순수한 증오와 광기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비쳐와 켈러는 계속해서 피를 흘리면서도 상대방에게 강하게 이끌리고 서로에게 중독되어 결코 헤어나올 수 없다. 상대방의 심리를 교묘하게 기만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며, 방해물은 거침없이 제거하는 공격적이고 냉혹한 켈러, 켈러는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철저하게 이용하며, 비쳐의 표현대로 굉장히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존재이다. 켈러의 비쳐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열망은 비쳐의 자유마저 뺏아 버리며, 결국 둘을 파멸로 이끈다.


비쳐와 켈러의 관계는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탄생한 필연에 의한 산물이다. 오즈의 다른 이들과는 달리 비교적 건강한 환경에서 생활한 비쳐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접촉, 교감에 목말라 한다. 쉴링어에게 강간 당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상태에서 마약에 중독되고, 자신의 본래 모습이 성기를 물어뜯는 미치광이는 아닐까 하는 자괴감마저 느낀다. 이런 엿같은 상황에서 켈러가 등장한다. 켈러는 사전에 쉴링어와의 모종의 협약도 있었고 별도로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비쳐에게 접근한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는 아내의 죽음, 음주운전으로 치어 죽인 소녀에 대한 죄책감과 악몽으로 괴로워 하고 있던 비쳐는 어려운 순간에 자신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켈러와 오즈에 온 이후 처음으로 그럴듯한 '신뢰'를 공유하고, 사랑의 감정을 인정한다. 그러나 비쳐를 유혹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켈러의 친근하고 은밀한 행동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거짓인지 분간할 수 정도로 애매모호하다.


그래 한번 켈러 이 미친 놈의 심리를 이해해 보자고 억지로 꿰어맞추어 본다면, 비쳐 아내의 자살을 가지고 놀리는 쉴링어를 바라보는 켈러의 떨떠름한 시선을 보면 이후 감정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될 수도 있다. 비쳐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린 후 방으로 돌아와 후회하는 장면도 이후 비쳐를 되찾기 위한 켈러의 노력을 예고하고 있다. 두 사람의 레슬링 장면은 켈러의 목을 꺾는 기술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섬뜩하다. 켈러의 유혹적인 표정에 흔들리는 비쳐의 시선을 보면 점점 켈러의 덫에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켈러는 원래의 쉴링어와의 음모대로 비쳐의 팔과 다리는 물론 비쳐의 신뢰와 믿음도 산산히 부셔버린다. 그러나 자신의 배신으로 차갑게 돌아선 비쳐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간다. 왜냐, 사실 켈러는 마조히스트니까.

"unconditional surrender, unconditional love"

자신이 비쳐를 상대로 시작한 심리전의 최종 목표로 쉴링어와의 음모와는 별개로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미친 놈, 놀고 자빠졌다.





옆으로 새서 쉴링어와 켈러의 오락가락 애증의 관계, 쉴링어가 주로 부딪치는 대상은 비쳐와 사이드이다. 켈러가 비쳐의 가석방을 일부러 망친 이후에 켈러와 비쳐의 관계가 틀어짐을 알고
짬짜미 바로 협력을 요구하는 모습을 봐도 쉴링어는 켈러에게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쉴링어는 범죄자의 본능으로 켈러는 적으로 두기에는 굉장히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고, 켈러 또한 자신이 저지른 배신에 대한 댓가로 쉴링어에게 칼에 찔려도 상관 없다는 듯한 자신의 목숨에 성의없는 태도를 보인다. 둘 사이에 비쳐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딱히 직접적으로 복수 관계로 얽힌 것은 아니다. 잔인성만을 따진다면 켈러가 더 하다. 자신이 호모섹슈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관계 후에 남자들의 목을 꺾어 버리고, 비쳐와 같이 잤다는 이유로 희생양으로 삼아 남자들을 살해하는 모습들, 또한 쉴링어를 방패막으로 삼아 살아 남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켈러가 역시 한 수 위이다. 제가 한 짓이 잘못인 줄 모르니까 천하무적인 셈. 만약 쉴링어와 켈러의 공조 관계가 지속되었다면 오즈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 지능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기로는 라이언도 빼놓을 수 없는데 만약 저돌적인 행동력과 쏠쏠한 인력동원력을 갖춘 쉴링어와 꽤나 영리한 켈러가 같은 세였다면 오즈의 흐름을 읽는 데는 기가 막힌 라이언도 안심할 수는 없었을 것.


비쳐는 켈러라는 존재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켈러에게 빠져 들고 켈러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믿지 않았던 듯 싶다. 마지막에는 켈러가 그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패배감 비슷하게 인정하지만 켈러는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존재이지만, 결코 그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쳐가 자신의 가석방을 도와주는 변호사 캐서린이 켈러와 만나겠다고 하자 여자가 켈러의 매력에 빠질까봐 불안해 하는 모습이나, 가석방 이후의 삶을 상상하면서 캐서린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비쳐는 오즈에 온 이후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내적 갈등을 경험하지만, 변화하는 주변 상황을 비교적 담백하게 받아들인다. 비쳐는 켈러의 연인이기 이전에 어린 남매의 아버지이고, 한 가족의 아들이자 형이며 이게 우선 순위이다.
때문에 가석방 이후에 새로운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삶에 쉽게 적응한다. 비쳐야말로 동물적인 적응력을 지닌 최고의 생존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까 켈러보다 한 수 위.



비쳐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희생적인 선택이나 다른 교도소로 이감된 이후 자신에게 전화를 건 비쳐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자신을 잊으라고 한 켈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 신의 구원에 대한 갈망, 비쳐를 살리고자 한 절박함이 자신의 코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면, 사형수 감방에서 나온 이후의 켈러는 오히려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비쳐가 없는 오즈에서의 생활은 공허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그러나 자신과는 다르게 비쳐는 다른 곳에서 새롭게 삶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간다. 켈러가 비쳐의 가석방을 일부러 망친 것은 순전히 소유욕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비쳐가 누리고 있는 자유, 자신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삶과 그 생동감에 대한 질투가 더 크다. 더 정확한 이유는 애새끼마냥 변덕이 부리고 싶었던 것이고 부러웠던 것. 때문에 자신과 같이 감옥에 갇힌 상태로 다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라이언의 기막히게 통찰력 있는 말마따나 "They're so just fucked up" 잡것들.

켈러와  라이언의 사랑 방식은 이기적이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것 뿐이라 안타깝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사랑 받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으로 글로리아 남편을 죽이도록 시키고 자신은 동생을 보호한다고 한 행동들이 결국에는 시릴을 사형수로 만들어 버린 라이언이나, 단지 같이 있고 싶어 그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자기합리화로 비쳐의 가석방을 망쳐버린 켈러는 도대체 저게 무슨 사랑이냐고 묻게 만들지만, 그게 그들이 알고 있는 진실하면서도 유일한 표현방법이다.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사람들마다 사랑에 관해서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증오로도 도저히 비쳐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데 어쩌겠는가. 비쳐 네가 정말정말 괜찮은 놈이라 이런 날파리가 꼬인 것.




켈러와 만나기 위해 오즈에 처음 왔을 당시 자신이 경험한 고통을 겪을 아담을 외면하고, 쉴링어의 손에 넘긴 비쳐를 보면 이 남자도 켈러를 어지간히 사랑하고 있구나 싶다. 하여간 미친 놈들.




켈러의 계략으로 오즈로 다시 돌아온 비쳐는 켈러의 소유욕과 집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자신에게 켈러는 치명적인 독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비쳐,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면 다른 누구도 절대 가질 수 없고 끝내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리고야 마는 켈러, 엄청난 고통을 안고 시작된 비쳐와 켈러의 사랑은 결국 완벽하게 파괴함으로써 완성되었다.


"People in love sometimes say that they're head over heels, but if they knew what the phrase really meant, I'm not sure that they'd make the claim. Back in the bad old days, as a warning to criminals,
judges would order malcontents to be hung by their ankles, heels over head.
The phrase came to mean a state of helplessness, confusion.
Now that I think of it, that is being in love."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다고 할 때 "head over heels" 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 표현의 진짜 의미를 안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 전 암흑기 시절에 범죄자들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판사들은 불평분자들의 발목을 거꾸로 매달도록 명령했다. "머리를 거꾸로 매달다"
그 표현은 어쩔 수 없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난 그게 바로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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