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Tergesen does not believe that Beecher would identify himself as gay,
"Just as people in prison have relationships of some sort,
and when they come out, they go back to their girlfriends or whatever. It's pragmatic"

- The Bergen Record, Prison uprising, Lee Tergesen, 2000. 6.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가석방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비쳐의 운명, 그리고 켈러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오즈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면, 이제 비쳐는 자신의 어두운 흔적들을 뒤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절대 뒤돌아 보고 싶지 않고, 지워야 할 그 기억들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켈러 또한 포함된다.


비쳐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자신의 가석방을 도와주는 변호사 캐서린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오즈와는 전혀 다른 이성과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공간, 적어도 인간애가 왜곡 당하지 않는 세상,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한 과거의 평온한 일상들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다. 캐서린과 켈러의 만남에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하는 비쳐, 남자로서 비쳐는 켈러가 이성에게 얼마나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켈러의 연인이기 이전에 현재의 자신의 연인을 지키고 싶은 남자로서의 본능적인 경계심이다. 그리고 오즈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신의 노력에 켈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워 하는 것이다.


다른 교도소로 이감된 이후, 비쳐에게 다시는 자신에게 연락하지 말고 자신을 잃어 버리라고 한 켈러이지만 다시 오즈로 돌아오고 같은 공간에 서게 되면서 모든 상황은 변화하게 된다. 켈러는 캐서린이 비쳐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비쳐의 사랑을 확신하면서도 그녀의 존재가 오즈는 물론 자신과 단절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한다.  켈러는 죽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고, 사랑 때문이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과 비쳐가 다시 만나는 것이 모두 행복해지는 일이라며 자신이 사형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켈러가 유죄임을 확신한 캐서린은 그의 변호를 맡을 수 없다며 중간에 손을 뗀다.


비쳐는 자신이 오즈에 와서 경험한 고통을 겪을 아담을 쉴링어의 손에 넘기고 켈러를 만나고자 한다. 사랑은 양심도 저버리는 어떤 행동들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으로 어떠한 댓가를 치루어야 하든지, 자신의 사랑이 세상과 신에게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죄라고 할지라도 켈러에 대한 사랑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켈러의 사형선고가 확정되고 두 사람의 오랜 이별 끝에 드디어 재회가 이루어진다. 비쳐는 켈러의 등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이름을 부르고, 켈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비쳐를 바라본다.


비쳐는 가석방으로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되고, 켈러를 사형수 감방에서 꺼내기 위해 노력한다. 켈러는 자신이 사형당할 거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해 두려워 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간 비쳐가 자신의 존재를 잃어 버리게 될까 봐 불안해 한다. 피트 수녀와의 상담에서 켈러는 자신 또한 살고 싶다며 비쳐에 대한 질투와 원망으로 절규한다. 비쳐는 증거조작으로 켈러의 사형선고를 뒤집고, 켈러는 사형수 감방에서 나온 뒤 비쳐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한다. 다시 살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비쳐가 없는 오즈의 생활은 이전과는 다르게 지루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오즈라는 생지옥에서 비쳐의 존재가 자신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면 비쳐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 자신은 가질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가기 시작한다.


오즈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에 비쳐는 인생의 기쁨을 찾기 시작하고, 켈러는 비쳐에게서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질 까봐 점점 불안해 한다. 그리고 점점 자신과 비쳐사이에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 불안감은 가중된다. 켈러는 비쳐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데려올 음모를 꾸미고, 비쳐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은 그의 질투와 소유욕을 자극하여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자신과 비쳐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모두가 행복해 진다는 합리화로 비쳐가 치루어야 하는 댓가는 외면한다. 비쳐는 다른 이들을 돕는 변호사, 한 가족의 아버지이자 아들, 형이 아닌 자신만의 'Toby'가 되어야 한다.


다시 오즈로 돌아온 비쳐는 자신을 가족으로부터 떼어내고, 자유를 빼앗아 버린 켈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비쳐를 되찾고 쉴링어로부터 그를 지키기 위해 켈러는 쉴링어와 손을 잡고, 연극 공연 도중 그를 살해할 계획을 꾸민다. 쉴링어의 죽음 이후 당연히 비쳐가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았던 켈러는 비쳐의 완고하고 차가운 결별선언에 당황한다.
오즈 안의 모든 생명들의 죽음, 잔혹하고 질긴 인연을 이어간 쉴링어의 죽음마저 안타깝다고 하는 비쳐를 켈러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의 길에서 방해가 되는 것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해치우고, 이 세상에서 자신과 비쳐 외에는 문제가 될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 켈러는 비쳐를 원망과 안타까움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이 사랑 때문에 한 모든 행동들을 비쳐는 켈러에게 단지 재미로 살인을 저지른 것 뿐이라며 냉정하게 질책한다.


비쳐는 자신의 세계, 가치관을 굳건하게 다지고 이곳에 켈러는 존재하지 않는다. 쓸모가 없다고 믿었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주던 존재이자, 아무런 미련없는 삶에서 비쳐의 사랑만이 자신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던 켈러는 그의 부정에 절망한다.  자신에게 켈러는 뒤로 해야 할 독과 같은 존재라고, 제발 자신을 놓아 달라는 비쳐에게 켈러는 결국 자살을 타살로 위장하여 난간에서 뛰어 내린다. 사랑만이 삶을 이어가는 희망이었던 켈러는 자신을 부정하는 비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 비쳐 또한 사형수가 될 거라는 것을 계산한 것이다. 켈러의 자살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비쳐에 대한 원망과 항의의 표시이자, 죽음으로도 결코 비쳐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그만의 궁극적인 사랑고백이다.


비쳐는 그가 안겨준 고통에도 불구하고 켈러를 사랑했지만 그가 자신을 사랑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냉혹한 살인마인 켈러가 사랑을 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제대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켈러의 질투와 집착, 소유욕은 잔뜩 뒤틀렸지만 그 또한 그만의 사랑이라는 것을 드디어 받아 들이게 된다. 이 둘의 사랑으로 자유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했고, 그 수 많은 생명의 희생으로 저것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치열하고 농밀한 감정의 깊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른 모든 잘못들이 결국에는 한 사람을 위한 절절한 사랑 때문이었다는데 감히 누가, 어떻게 비웃을 수 있겠는가.

Posted by 흰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