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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U : Everyone's Wating

모퉁이 2008. 9. 23. 20:37


식스 핏 언더의 피셔가의 사람들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은 모두 이기적이며 잔인하게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다.
루스는 피셔가의 죽음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자 하면서 스스로를 속박한다. 네이트와 브랜다는 계속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질긴 인연을 끊지 못하고, 네이트와 리사는 결코 공존할 수 없었다. 방어기제에 갇혀 성장을 멈춘 브랜다는 빌리의 숙주이다. 데이빗은 푸에르토리코와 멕시코를 구별하지 못하고, 페데리코는 데이빗은 게이이지만 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고 부모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데이빗과 키스는 이상화에 갇혀 생동감을 잃어 버렸고, 클레어와 성장통을 겪는 인연들은 그 설익은 시간만큼 무모하고 아슬아슬하다.

클레어와 이디의 교감은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 웨스트처럼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얼마나 짜릿한가, 내가 너를 볼 수 있고 네가 나를 볼 수 있다는데. 이디는 클레어의 경배 대상이다.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가 자신이 경멸하는 소시민적 일상과 예술의 모순과 엉킴 속에서 한스를 숭배하고 질투하며, 선망했던 것처럼 치열하고 혼돈이 가득한 성장의 길목에서 이디는 클레어에게 촉진제가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책이나 음악에서 만나는 진중한 울림과 달리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설레임이 되고 동경하게 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오즈>의 비쳐-켈러는 감옥 안이라는 특수한 공간, 고통을 순화하고자 절실하게 찾게 되는 위안이라는 다소 비겁한 관점에서 '동성애'는 비켜가고자 했다. 그들에게 사랑은 생존이었다. 반면 <식스 핏 언더>의 데이빗-키스는 일상 생활 속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평범한 동성 '커플'일 뿐이다. 그렇지만 네이트와 브랜다의 신물나는 연애사, 루스와 클레어의 진물이 베고 생채기가 눌러붙는 성장통에 비해 평탄하고 굴곡이 없어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고, 이 두 사람이 갖는 현실을 딛고 선, 특수성을 조금 더 진지하게 다루어주길 바랐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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