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Bron/Broen (2011, Sweden-Denmark)

   

스웨덴의 말뫼와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잇는 외레순다리에서(덴마크어: Øresundsbroen, 스웨덴어: Öresundsbron) 45초간 불이 꺼지고 잠시 후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드라마의 제목이자 사건이 시작되는 배경이 되는 Bridge는 덴마크어로는 Broen, 스웨덴어로는 Bron이라고 표기한다. 정확히 스웨덴과 덴마크 국경 가운데에서 발견된 시체는 스웨덴의 여성 정치인으로 이후 검시 결과 허리 아래 몸의 절반은 덴마크 매춘부의 것으로 밝혀진다. 그래서 스웨덴의 형사 사가(Saga Norén)와 덴마크의 형사 마르틴(Martin Rohd)이 합동 수사를 하게 된다.


차갑고 건조한 현대 수사물이지만 이 드라마속 인물들은 온갖 신화와 상징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마르틴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오이디푸스나 이도메네우스와 무척 닮아 있고 다른 주요 등장인물의 관계도 그리스 신화의 비극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뒤틀린 영웅주의인가 싶었더니 그 아래에는 욕망과 증오가 들끓고 있다.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가장 친한 친구와 아내의 간음, 그리고 잇따른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방향 잃은 증오와 복수심만 남은 남자와 나 또한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너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울부짖으며 다짐하는 또 한 명의 남자. 이 드라마의 끝과 시작, 다시 끝을 마르틴이 장식한다.


이 드라마속 인물들은 매우 불완전하다. 천연덕스럽고 붙임성 좋은 마르틴은 가장 가까운 이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데 실패한다. 마르틴의 반복되는 결혼과 이혼 기간 방치된 큰아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고 임신한 아내를 배신하고 저지른 자신의 부정으로 부부 생활은 위기에 처했다. 사가는 데이트는 섹스를 위한 과정일 뿐인데 왜 이미 섹스를 했는데 귀찮게 또 데이트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제 코가 석자인 이혼 직전의 마르틴이 사가의 이성관계에 관해 충고랍시고 말하는데 듣는 사람도 기가 막히다. 사건 해결에 영리함과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는 사가이지만 사람 대하는 것에는 영 젬병인 이 유능한 '기계'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마르틴과 그의 충고를 최악의 순간에 적용하는 사가. 이런 추리 장르에서 능력은 매우 뛰어남에도 사회친화적 기술은 그에 턱없이 못미치는 주인공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사가가 나 또한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고 처연하게 중얼거리는 장면은 등장인물에 대한 동화가 아닌 연민을 느끼게 한다.


모든 인간은 욕망을 지니고 있고 다른 형태와 점성으로 발화될 뿐이다. 열정, 혹은 욕망의 해갈에 충실한 마르틴과  인간을 한층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는 그 모든 감정과 관계가 결핍된 듯이 보이는 사가. 원죄를 품은 어쩔 수 없는 한계와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마르틴은 부끄러움을 알아버린 인간들간의 세속적인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 사가를 속세로 이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등장한 메피스토는 충동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파우스트의 음욕을 폭로하고, 방황하고 절망했던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사랑으로 구원받는다. 교만했던 마르틴은 움직임을 멈추었고, 그가 어엿비 여기었던 사가는 외면했던 자신의 과거를 짊어진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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