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와 비앙카는 교환되는 가문 재산의 일부로 취급되며 구혼자들은 지참금을 놓고 신부의 현물가치를 노골적으로 재단한다. BBC의 각색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꼽자면 바로 카트리나와 페트루치오의 이글거리는 첫대면과 페트루치오가 카트리나를 '채찍질'하기에 들어가는 결혼식 장면이다. 먼저 인물이 어떻게 다듬었는지 먼저 살펴보자면 카트리나(케이트)는 차기 야당 당수를 노리고 있으며 멀리는 총리까지 바라보는 전도유망한 정치가이다. 그러나 당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주위에서는 슬슬 '결혼'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언니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결박까지 당했던 비앙카는 각색에서는 부와 미모를 겸비하고 독립적이며, 합리적으로 혼전계약을 요구하는데 어쩌면 카트리나의 분리된 자아로 보여진다. 국세청에 진 빚에 쫓겨 호주까지 달아난 페트루치오는 백작가의 후예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있을 뿐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돈 많은 사람을 잡아야 한다. 그 사람이 여자이면 더 괜찮고. 르네상스 시대의 여자가 남자에게 대갈통을 갈겨버린다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던 카트리나와 그에 못지 않은 성질머리를 지닌 허울좋은 한량 페트루치오의 첫만남을 BBC는 대사까지 충실하게 옮겨온다. 상대를 향해 독설을 퍼붓고 뺨을 올려 붙이는 대사 아래 들끓는 성적 에너지까지 두 배우의 좋은 연기와 호흡으로 더 빛을 발한다. 재미있는 사실, 이 두 배우는 이전에 BBC의 또 다른 드라마 <찰스 2세>에서 루퍼스 스웰은 찰스 2세 역을, 셜리 헨더슨은 찰스 2세의 수 많은 정부 중 하나였던 캐슬마인 백작부인에게 모욕까지 당했던 캐서린 여왕 역을 했었단다.
자, 이제 본격적인 살쾡이 길들이기에 돌입한다. 원전에서는 이 과정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묘사된다.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고 언어적 폭력을 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카트리나를 사랑해서라고 속삭인다. 이거, 매맞고 사는 여자들의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소극에서 뻔뻔스럽게 펼쳐지는 야만이 결혼과 부부관계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와 기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몇백 년이 흐른 지금도 웃을 수가 없다. BBC에서는 성질급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종종 여장을 즐기는 이 남자가 '여섯 살배기" 철부지일 뿐이라며 에둘러서 핑계를 댄다. 그리고 결혼지참금의 우연적이고 부차적 결과뿐이었던 사랑의 주도권을 케이트에게 안겨준다. 케이트를 이탈리아의 외딴 별장에 고립시키고 가방도 잊어버리고 농땡이 치는 이 남자는 또 섹스로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그러나 나한테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으면 이 가방 던져 버릴껴 으르렁거리는 하룻강아지를 향해 케이트는 먼저 자신이 이 황당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어른스럽게 인정하면서 원전의 주종관계와 같았던 수직적인 권력구도를 역전시킨 것이다. 말이 좋아서 역전이지 왜 이런 철부지 아이남자을 거두는 오지랖 넓은 모성이 사랑으로 포용되는지. 이제는 이런 폐습의 악순환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땡깡은 엄마젖 떼면서 버릴 것이지 왜 부인한테까지 바라냐고.
해를 달이라고 고집하고, 노인을 아가씨라고 우기는 페트루치오의 말이 맞다고 카트리나가 인정한 순간 아니, 이 여자가 드디어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졌구나 패배감을 느꼈던 것과 달리 알량한 자존심을 챙겨보려는 페트루치오의 억지를 받아주는 것이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화대를 치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에서는 몹시 후달리지만 연애 경험도 없는 처녀(라고 들은) 케이트를 섹스로 우위에 서보려고 했던 페트루치오의 발악을 노련한 정치가답게 대응한다. 페트루치오의 폭력성과 가학성을 BBC에서는 맹수성을 내포한 성적 매력으로 순화시킨다. BBC의 각색은 아무리 좋게 돌려 말하려고 해도 대갓집 마나님과 힘깨나 쓰는 돌쇠의 야합으로 요약된다. 아니, 내세울 것은 힘 밖에 없는 돌쇠가 마님을 보쌈하는 모양새다. 이것은 전적으로 루퍼스 스웰에게 책임을 돌리면 된다.
다루기 힘든 맹수를 포획하면서 영광의 상처를 입었지만 주인에게 복종하도록 길들였다며 호기롭게 웃었던 페트루치오와 달리 능력있는 부인이 이혼을 요구할까봐 전전긍긍 하고 정치가 아내를 성실하게 외조하며 가끔 취미생활로 예쁘게 화장도 하고 망사스타킹에 구두도 신는, 사실상 케이트가 페트루치오를 거두어서 길들이는 것으로 그려진다. BBC 각색의 핵심은 성과 권력의 전복이다. 결혼지참금에 팔려가며 아버지와 남편에게 순종해야 했던 당시의 여자들과 달리 막돼먹은 폭언으로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려고 했던 카트리나의 목소리를 거세하는 과정을 담은 '사냥감 길들이기'의 카트리나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케이트와 비앙카가 합쳐져야 비로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카트리나로 완성된다. 계급과 불평등을 사랑이라고 청승맞게 자위하며 그 폭력성에 길들어져 얌전하게 적응하는 부조리를 신랄하게 폭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환상만 파는 싸구려 신파보다는 훨씬 낫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