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Fido(2006) : 얘들아, 너희들도 이제는 분발해야지

Top 20 zombie movies of all time

보스턴지에서 추천하는 좀비영화, 그런데 좀비랜드는 저 명단에 올려 놓기 우세스럽지 않았을려나.


캐나다에서 제작한 파이도 Fido(2006)는 인간과 좀비의 차별과 계급성을 순진한 척 뻔뻔하게 풀어낸 이야기이다. 좀비물에서 내가 제일 꺼려하는 것이 바로 좀비라는 소재를 이용해 뻔한 인간들의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지 로메로의 접근 방식이 재미 없다. 좀비이야기에 그럴 듯한 주제의식을 집어 넣기 위해 혐오적인 인간의 정치성을 구겨 넣은 느낌이다. 문제는 좀비와 인간의 생존경쟁과 이 정치성이 배합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형식은 생존본능으로 좀비가 인간을, 인간이 좀비를 사냥하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에 길들여진 인간들의 눈에야
얘들이 추하고 역겹고 머리 잘라서 없애 버려야 할 녀석들이지만, 단지 그냥 허기가 져서 먹을 뿐이다. 잠깐, 솔직히 얘네들이 먹는 것도 추잡하다. 불에 굽지도 않고 매너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우걱우걱 창자까지 야무지게 씹어서 먹으니 결코 예뻐보일 리가 없다.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먼저 좀비 머리를 쳐야 하고, 배가 고프니까 인간을 먹어야 하고 이거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카니발리즘이다. 단지 한쪽이 피부가 맨들맨들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챙기고, 다른 한쪽은 피부에 고름이 흘러 나오고 식사 예절이 없을 뿐.

파이도는 인간과 좀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좀비들이 인간들의 안전지대 밖에서 배회하거나 순화되어 전자 목걸이를 차고 인간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거대 좀비회사는 인간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좀비사냥방법을 교육하고, 좀비노예들을 인간에게 제공하며 이 계급성은 견고하게 유지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회사의 "Z" 문양은 나치의  스바스티카(卐) 표식을 연상시킨다. 좀비의 위험성을 연일 인간들에게 주입하는 광고는 괴벨스의 연설 뺨친다. 인간들이 몇 마리의 좀비를 소유했는지가 부의 상징이 되고, 좀비에 물리지 않고 인간으로 온전하게 머리를 보존하여 죽도록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노후대책의 중심이 된다. 오호라, 그런데 인간지사 알 수 없다고 좀비와 인간 사이에 정이 통한다. 어허, 좀비도 태초에 인간이었다니깐.

그 정치성이라는 것을 인간의 이기심을 제어할 수 있는 인위적 안전망이 사라진 혼돈속에서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한 대니 보일의 28일 후도 있었고 좀비와 인간의 공존이라는 기발한 묘수를 제시한 사이먼 페그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도 있었다. 파이도는 인간과 좀비를 분리하여 계급성을 전제로 한다. 원래 좀비물이 전제하고 있던 인간과 좀비의 차별의 부당함을 내세우고 이거 불평등한 것 아니냐고 순진한 척 당돌하게 되묻는 것이다. 그렇다고 좀비들의 쿠데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뿌리를 뒤집는 하극상말이다. 이 영화의 경고라면 좀비보다 못한 인간들도 있고 좀비를 사냥하고 노예처럼 부렸던 인간이었던 당신도 어느 순간 좀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좀비들은 인간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동족을 보고 분노를 느끼고, 우정을 느끼고, 사랑을 하는 감정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인간과 좀비의 주종의 관계에서 공존의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발판이 된다. 물론 주축은 인간이다. 어, 인간의 역사에 반하는 순진무구한 설정이긴 하다. 아니, 좀비 따위로 불평등의 기원을 이야기하다니 발칙하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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