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Heureux, heureux à en mourir

TITLE : Heureux, heureux à en mourir
DISCLAIMERS : Oz remains the sole property of Tom Fontana and HBO.

 

나는 화냥년의 아들이었다. 정숙한 존슨 부인은 나를 볼 때마다 길게 찢어진 쥐색빛 눈을 사납게 흘겨댔다.
존슨 씨는 수요일마다 마리를 찾아왔다. 마리, 아름다운 나의 마리. 밀보다 더 윤기나는 피부와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마리는 이 마을의 여느 여자들보다 가장 아름다웠다. 일요일이 되면 마리는 나에게 가장 깨끗한 바지와 셔츠를 입혔고, 번쩍번쩍 윤이 나는 구두를 신겨 주었다. 마리는 종아리에 닿는 치마와 목까지 단추를 채운 하얀색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마리의 노래와 기도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속도와 입모양이 조금씩 맞지 않았다. 한쪽 눈을 반쯤 뜨고 마리를 올려다 보면 마리는 애써 엄숙한 얼굴을 하면서 장난스럽게 몰래 눈을 찡긋했다. 마리와 나는 목사의 연단이 가장 잘보이는 세번째 열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높이 치켜 들었다.

마리와 내가 이 마을에 온 지 세 번의
겨울이 지났지만 교회 안의 누구도 우리에게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가, 신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단다. 주위의 수군거림에 고개를 숙이려 들면 마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을 알려 주듯이 내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존슨 씨는 수요일과는 다르게 한번도 마리와 내 쪽을 쳐다본 적이 없었다. 마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 손안 가득히 버찌를 안겨 주지도 않았다. 시종일관 어조의 높낮이가 없는 길쭉하고 불그죽죽한 얼굴의 존슨 씨는 가느다란 콧수염에서 꾸역꾸역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훔쳐냈다.

데이나, 마리와 나는 데이나와 함께 살았다. 데이나는 늦은 밤, 누군가 찾아 올 때를 제외하고는 골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집안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그 방은 두꺼운 벨벳 공단 천에 가리워져 빛이 들지 않았다. 데이나는 낮에도 절대 커텐을 열지 않았다. 마리가 중요한 일로 밖으로 나가야 할 때면 나는 데이나를 찾아 갔다. 데이나는 방안으로 들어선 나에게 흘깃 눈길을 던지곤 다시 보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 가을, 맞은 편의 노파가 죽은 뒤 마리가 가져온 낡은 흔들 의자 위에서 데이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벽면 한쪽에 위치한 탁자 아래 귀퉁이에는 내 물건들을 쟁여 놓았다. 3시 15분에 갇혀 버린 자잘한 금이 간 회중시계, 마리와 지난 가을에 구경간 곡마단 티켓, 파란색 초크와 연신 웃어대는 사람들로 박제된 광고지들. 마리는 내 키가 닿지 않는 곳에 숨겨버리기 때문에 이곳이 적당했다. 혹시 데이나가 몰래 가져가지는 않았을까 다음 날 확인해 봐도 그대로였다. 믿음직한 데이나, 탁자 아래 발목을 겹쳐 앉고 있으면 코끝부터 감싸오는 오래 묵힌 들척지근한 종이냄새와 한 줌의 볕을 따라 부유하는 먼지들. 그 가운데에 데이나가 있었다.
 
마리가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를 가져오면 병든 병아리 새끼 마냥 찔끔거리며 꼭 절반
만 먹었다. 완두콩과 당근은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였다. 마리는 음식을 남기는 것을 싫어했다.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온 마리는 데이나가 남겨 놓은 샌드위치를 보고 나도 안하는 음식 투정을 하냐고 화를 내곤 했지만, 데이나는 고개를 외로 비틀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바보같으니, 나처럼 땅에 묻을 것이지.

데이나는 내가 다른 집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울타리를 부수고, 나를 보고 갈보년의 아들이라고 부른 다른 아이들을 밀어 넘어 뜨려도 마리처럼 무시무시하게 화를 내지 않았다. 마리처럼 시시한 흑백영화를 보며 우스꽝스럽게 울지도 않았다. 마리가 집을 비우고 나와 단 둘이 남게 되면, 언제부터인가 데이나는 가사를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처음에는 목에 땟국이 끼고 고린내가 나는 술주정뱅이 고든 씨처럼 목소리가 쉬어서 갈라졌다. 음정이 제대로 맞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점차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부를 때면 빛이 들지 않은 음침한 그 방도 숨을 죽이고 나와 함께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데이나의 목소리는 낡은 흔들 의자에서 나지막히 흘러나와 내가 앉아 있는 마루로 스며들었고, 검은 네 기둥 사이로 사라졌다. 데이나와 내가 갇힌 그 방은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데이나의 단조롭고 넓게 울려 퍼지는 울음을 소리 없이 삼켰다. 그 고요한 격량 속을 함께 떠돌며 은밀한 기쁨을 누린 것은 데이나와 나, 둘뿐이었다.

데이나와 나의 비밀을 감추면서 부풀어 오르는 벅찬 환희,  그리고 다른 누군가 알아차리기 전에 그 모든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고 자랑하고 싶은 불안함과 조급함으로 애가 탔다. 두번의 계절이 바뀌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데이나에게는 목소리가 있다고, 노래도 할줄 아면서 우무룩하게도 데이나는 우리에게 그것을 감추었다고 우쭐거리며 마리에게 알려주었다.


마리는 기대했던 것처럼 기뻐하지도, 호들갑스럽게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곱게 휘여진 가느다란 눈썹이 움찔거리더니
달싹거리는 붉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것은 마리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여주인공 얼굴과 비슷했다. 떠나는 연인을 잡지 못하고 한번의 길고 긴 포옹과 입맞춤으로 보내야 하는, 좇아가지도 못하면서 가슴만 쥐어뜯는 멍청한 여주인공. 마리, 가끔은 데이나의 그 노래를 들으면 어쩐지 여기가 아픈 것 같아. 어깨와 아랫배 어드메 들어앉은 묵직한 그것이 이러면 빠져나갈까 배에 힘을 주어도 사라지지 않아서 울고 싶었어.
 
데이나의 공간에 내 영역을 만들어도, 부잡하게 구는 나를 쫓아내지도, 마
리처럼 다정하게 동화책을 읽어주지는 않았지만 데이나가 아끼는 책으로 내가 도미노를 쌓아도 소리 없이 얇은 입가를 비틀어 올리기만 하고, 한들한들 잠이 들면 데이나의 무릎 위에 놓여 있던 담요를 내 위에 덮어 주었다. 그 비밀을 마리와 나눈 이후, 이제 노래를 불러줄까 싶어 흔들 의자를 잡아당겨 주사위로 고정시켜도, 차례로 발걸음에 힘을 주어 기다랗게 걸어도 데이나는 고집스럽게 책만 들여다 보았다. 시커먼 천 사이로 연한 붉은 빛이 스며들 때까지 데이나의 책장은 넘어가지 않았다.

데이나에게 손님이 찾아온 날이면 마리는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졸음이 미쳐 가
시지 않아 성가셨지만 다급하게 재촉하는 마리의 손에 끌려가 문 밖에 쪼그리고 앉았다. 담요 위로 나를 안은 따순 마리의 몸이 회전목마를 타는 것처럼 기분좋게 좌우로 흔들렸다. 마리의 붉은 입술에 물린 담배는 어둠 속에서 반딧물처럼 빛을 냈다. 허연 꼬리를 꼬물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붉은 불빛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저러다 달라붙어 사라지면 어쩌나, 담요 위로 길게 숨을 오그라뜨리는 마리의 진동이 느껴졌다. 데이나는 따뜻하게 안에 있는데, 왜 마리와 나만 밖에 있어야 하냐는 잠투정에 더욱 까매지는 마리의 눈으로 칭얼댈 수도 없었다.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어."
 
마리의 발꿈치 아래 태워진 담배가 수북이 쌓이면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볍게 춤추듯 발걸음을 놀리는 마리, 움직일 때 거의 기척을 내지 않는 데이나와 달리 낯선 발소리는 무겁게 마루를 짓누르고 단정치 못하게 뒤축을 끌어 당겼다. 마리는 나에게
어서 방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얄궂은 밤이슬에 마리의 뺨은 축축해졌다.
오슬오슬 차갑게 식어버린 담요 사이로 들어가 눈 아래까지 끌어 당겼다. 잠시 후에 들어온 마리는 욕실로 가서 햇볕
에 바짝 마른 수건과 잠옷을 꺼내었다. 내가 아직까지 깨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면 마리가 화를 낼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실눈만 뜨고 빠꼼히 쳐다보았다.

내 방의 맞은 편이 데
이나에게 밤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머무르는 방이었다. 잠자리를 잡아 두 날개를 떼어 내고, 배를 두동강 내어 짖이긴 것처럼 데이나는 널부러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데이나의 머리 맡으로 살글살글 다가간 마리가 조심스럽게 손을 댈라치면 흠칫 놀란 데이나는 구석으로 기어가 황급히 몸을 말아 쥐었다. 데이나의 기다란 모가지 사이로 붉은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졌다. 마리는 수건을 말아 쥐고 가만히 내려다 보기만 했다. 마리도 그 요사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앙상하게 비쩍 마른 흰 몸뚱이와 달리 기이할 정도로 힘찬 기운을 뿜어내는 데이나의 붉은 머리카락은 사람의 혼구녕을 쏙 빼어 놓았다.

마리는 데이나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시트를 벗겨내 구석 한쪽에 내던졌다. 새로운 시트를 깔면 마리는 벽면을 향해 벌레처럼 몸을 구부정하게 궁글렸다. 그러면 마리는 대야에 마른 수건을 적셔 데이나의 엄지 발가락 틈새까지 꼼꼼하게 몸을 닦아 주었다. 그것은 존슨 씨의 엄숙한 기도보다 더 신성하고 거룩한 의식이었다. 마리는 먼저 데이나의 축 늘어진 오른쪽 팔을 닦았다. 겨드랑이를 훔치고 팔꿈치를 살살 문지르고, 손가락 틈새까지 살살 닦아 내었다. 복도의 누르께르한 빛 사이로 치켜 올려진 마리의 팔은 시푸르둥둥 멍들어 있었다. 이쪽에서 데이나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잠이 들었는지, 마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나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돼지도 않는지 마리는 다른 쪽 팔을 같은 섬세함과 느릿함으로 닦고 나뭇가지 마냥 불툭 뼈가 솟아있는 어깨와 오그라든 등허리로 내려갔다. 마리는 나를 목욕시킬 때처럼 장난스럽게 물방울을 튕기지도 않았고, 얼른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어하는 나를 붙잡기 위해 아프지 않게 엉덩이를 때리지도 않았다.

데이나는 절대 마리가 있는 쪽으로 몸
을 돌리지도 않았고, 마리가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늘어 놓아도 웃지 않았다. 데이나는 말을 하지도 않았고, 나와 마리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것처럼 초점을 놓친 흐릿한 퍼런 눈을 들어 어깨 너머 어딘가로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데이나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을 건 적이 있었다.

"아가, 문을 열어 줘."

절대로 안되는 일이었다. 작년 봄 데이나가 처음 이 집 밖을 벗어났을 때였다. 데이나는 흔들 의자에 앉아 있지 않고, 낮을 가리운 검은 천을 살며시 밀어내고 창문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나 옆으로 다가갔더니 내 종아리보다 더 가느다란 팔로 나를 번쩍 안아올렸다. 아, 제비꽃이었다. 며칠 전에 지붕 아래 시멘트 사이로 비죽이 꽃을 피웠다. 야구공을 발견한 개새끼 마냥 데이나의 눈이 번쩍 거렸다.

"가져다 줄게."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데이나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나는 아가가 아닌데, 무서울 때는 가끔 마리의 젖가슴을 만지긴 했지만 마리는 내가 아기처럼 군다고 놀리지도, 저리 가라고 내치지도 않았다. 마리는 내 푸른 눈을 좋아했다. 마리의 아버지는 해군이었다고 했다. 커다란 배를 타고 못된 사람들을 혼내주고, 이 세상 끝까지 안 간 곳이 없다고 했다. 마리의 엄마와 마리는 언제나 돌아올까, 배가 드나드는 선착장에 앉아 그 물빛이 하늘을 닮은 싯푸른 색에서 해를 삼킨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돌아왔냐는 물음에 마리는 환하게 웃었다. 아가, 간절한 기다림은 한정없는 희망을 키우고, 기적처럼 사랑을 데불고 온단다.

나와 같은 색의 데이나의 푸른 눈동자, 데이나의 붉은 머리카락을 마리는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그래, 데이나가 떠나면 마리는 나만을 사랑할 것이었다. 화를 내지도 숨어서 몰래 울지도 않을 것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데이나가 내 손을 붙들고 함께 뛰는 것이었다. 신발을 신지 않은 데이나의 새하얀 발은 금방 더러운 흙이 묻고, 길가에 버려진 유리조각에 살갗이 찢겨졌다. 빈충이처럼 제몸 하나 돌볼 줄 모른다고 마리가 화를 낼 것이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악다구니를 쓰며 뻐팅겼지만 내 손을 잡아채는  데이나의 힘은 우악스러웠다.

새벽에 마리가 다려준 셔츠 소매에 누런 코가 묻어 맨들맨들 해지고, 데이나가 잡아 쥔 손목이 시뻘갰다. 데이나가 미웠다. 너 같은 거 혼자 가버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찢어질 듯한 타이어 소리가 들렸다. 마리였다. 가끔 마리를 찾아오는 갖가지 신기한 문양의 그림을 새겨 넣은 심술궂은 인상의 사내도 있다. 나의 용감한 마리, 나를 구해주러 올 줄 알았어. 아파, 마리. 너무 아파. 나에게 화를 내지 마. 처음으로 마리가 나의 뺨을 아프게 때렸다. 잘못 했어. 마리. 데이나는 골방으로 돌아갔고, 마리는 방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다리 사이로 머리를 감추었다. 고요한 집 안에 마리의 길고 긴 울음만이 사방으로 잠겨 들어가 모가지까지 차올랐다.
 
희멀건한 오줌을 지린 데이나의 가랑이 틈새까지 구석구석 닦아 내면 마리는 데이나에게 흰색 면 잠옷을 입혔다.
마리가 대야와 수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가면 그동안 꿈쩍도 않던 데
이나의 몸뚱이가 잘게 흔들렸다. 대야의 물을 부시고 수건을 빨아 널고 마리가 나오면 데이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마리는 복도의 전등을 끄고 내 방문을 들여다보곤 다시 데이나가 있는 방으로 돌아가 절반 정도 문을 닫았다. 슬슬 졸음이 다시 몰려 올 무렵 귓가에 마른 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스쳤다.

어느 날인가 새빨간 데이나의 머
리카락이 하늘을 향해 사방으로 치솟아 마리와 내가 사는 파란 지붕이 검게 타오르고, 데이나의 골방을 둘러싼 시커먼 천이 데이나의 머리칼처럼 붉게 타오르는 꿈을 꾸곤 마리와 데이나가 있는 방으로 숨어 들었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마리의 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러나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도 마리는 나를 마주 안아주지 않았다. 데이나의 등을 안은 마리처럼 나는 마리의 등허리를 뒤에서 끌어 안았다.
마리, 데이나는 마녀야. 마
리, 데이나를 버리고 우리 둘이 멀리 떠나자. 마리, 데이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거지?

아침이면 나는 내 방으로 되돌아 있었고, 데이나는 원래의 골방으로 돌아갔다. 간밤의 마리의 의식도, 내 악몽도 어디서부터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전히 마리가 집을 비우면 나는 데이나를 지켜야 했고, 마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마리, 제발 어서 돌아와. 마리, 데이나는 못된 마녀라고 내가 말했잖아.

이 마을에서 네번째 가을이 찾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시큼한 땀내가 나는 데이나의 몸을 꼼꼼히 닦아낸 마리는 데이나의 등을 안고 잠들었다. 마리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진 나는 몰래 마리의 등으로 숨어들었다. 창틈 사이로 붉은 달이 스러졌고, 마리의 동그란 가슴을 쥐고 풍성한 검은 머리칼을 삼켰다.

"이번엔 실패하지 마. 내 목에 칼을 쑤셔 박아."

내가 몰래 찾아와서 마리가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마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마리, 마리가 데이나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마리, 마리가 아기처럼 데이나의 젖가슴을 만지고 부끄러운 곳에 입맞춤을 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제발 나에게 화를 내지 마. 

"나를 보내줘. 마리, 크리스와 나를 보내줘."

다행이다. 나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었다. 데이나의 말은 여섯 살인 나보다 더, 언청이인 토드보다 더 서툴렀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에, 데이나. 너는 네 아들보다 약 때문에 떠나지 못한 거잖아.
네가 도망가면 크리스를 그 놈팽이 새끼한테 보내버릴 거야."

마리, 잘못했어. 데이나가 더 이상 노래를 불러주지 않잖아. 말을 할까 싶어 마리 몰래 정강이를 걷어 차지 않을게. 데이나의 샌드위치에 몰래 개미를 집어 넣지도 않을게.

내가 잘못했어. 제발, 나를 보내지 마. 마리, 마리, 나의 마리.

"넌 나에게 독이야. 제발 내가 살 수 있게 해줘."

마리, 데이나의 구슬픈 노래는 참으로 요사스러워. 그 시커먼 아가리는 사람들의 비명을 삼키고, 눈물을 훔치고,
희망을 뭉개 버리지.


"그럴 수 없어. 난 네가 필요해. 너를 사랑해."

오줌을 지렸나보다. 마리를 안은 등허리와 내 사타구니 사이가 흥건히 젖어 들었다.

마리, 제발 나를 떠나지 마.

토비, 절대 나를 잊어서는 안돼.

마리, 왜 그들은 알아 주지 않는 것일까. 이것도 사랑인 것을. 가슴 타는 사랑인 것을.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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