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All is visible and all elusive

TITLE : All is visible and all elusive
CLASSIFICATION : Toby, Genevieve
SPOILERS : season 1#2, Visits, Conjugal and Otherwise
DISCLAIMERS : not mine. used shamelessly and without remorse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당신은 없어."

세상이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양분되어 있고, 죄를 저지른 악인은 감옥으로 가서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순진한 믿음은 변호사 시험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박살났다. 법정에서 고급스러운 양복을 걸치고 그럴 듯한 엄숙하고 진실되어 보이는 연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후, 의뢰인이 지불한 값비싼 수임료의 대가를 치루면 그만이었다.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형법체계인만큼 모순된 점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알량하게도 법과 정의를 수호한다고 믿었다. 물론 내 자동차 앞 유리창에 앳된 소녀의 얼굴이 뭉개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의 그럴 싸한 말들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이 지내야 하는 곳이 이런 곳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하였다.
아니, 동료들 사이에서 재미없는 농담거리로 삼을 정도로는 알았지만 이곳에 온 첫날부터 엉덩이에 나치 표식이 지져지고 가능하리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곳에 남자의 좆부리가 박힐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내 음주운전사고가 지역신문에 실리고, 비난 여론이 거세어지자 단 한번 커다란 실수한 것 뿐인데, 어쩌면 저렇게 사람들이 비난할 수 있느냐며 아내는 화를 내기도 하였다. 협박 전화가 걸려 온다거나 문 앞에 죽은 동물의 시체나 배설물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상한 지역구에서 생활하는 만큼 교양있는 사람들의 차가운 외면과 미묘한 멸시는 더 교활했고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아내는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이른 새벽이나 문을 닫기 직전에야 몰래 식료품점에 가서 급하게 필요한 것들을 사왔다.

두달 만에 나를 찾아 온 아내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내가 처벌했던 상종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들이 처분된 이런 혐오스러운 곳으로 면회를 오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화를 내는 대신 애꿎은 다른 사람들을 탓하던 아내는 형량이 결정된 이후 면회를 오지 않았고, 아이들 소식은 어머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늦가을의 비맞은 낙엽냄새에 취하고 눈 내리는 가로등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순한 사람이었기에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내 얼굴이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그림보다 다급한 것은 여자의 체취였다. 이곳에서도 남자의 창백한 눈동자가 지켜보는 듯 했다.
다급하게 아내의 입술을 찾고, 허둥지둥 바지를 내리는 동안에도 아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내의 몸은 아직 건조했지만 미처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듯이 미약하게 신음을 흘리자 그제서야 아내가 자극을 느끼는 곳을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뒷목덜미와 등허리를 쓸어내려도 아내의 긴장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끝내라는 듯이 아내는 내 둔부를 잡아 당겼다.  

그대로였다. 아내가 사용하는 은은한 화장품과 아내의 몸에 베인 아이들의 연한 살냄새는 순간 집으로 돌아간 듯한 환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막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아들 녀석의 의기양양한 얼굴과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을 했을 때 뒷마당에 맨 그네를 타고 높게 울려 퍼지는 딸아이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내 손가락 두 개를 겨우 움켜준 이제 막 태어난 어린 아들의 배냇짓이 아프게 어른거렸다. 점점 달아나는 환각을 붙들고자 아내의 몸을 필사적으로 끌어 안았다.

두평 남짓한 공간에 들리는 것은 살갗이 닿는 거슬리는 파찰음과 미쳐 날뛰는 듯한 내 숨소리뿐이었다. 아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쇼파에 조그마한 얼룩이 지는 것도 견디지 못하는 깔끔한 아내인데 침대에 내 옷을 깔아둘 것을 그랬다. 하루에 수십 건의 부부면회가 이루어지는 지라 아내가 누워있는 시트에 얼마나 많은 절박함과 배설물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는지 몰랐다. 사정의 기미가 느껴지자 살며시 아내의 아래턱을 쥐고 대비가 필요한 것인지 눈으로 묻자 아내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내의 눈에서 찰나 스쳐간 동정심에 욕구는 초라하게 시들었고 나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돌아선 하얀 아내의 벗은 등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지난 여름 휴가에 다녀온 해안가에서 생긴 주근깨가 가냘픈 어깻죽지 아래 가느다란 실선처럼 이어져 있었다. 로펌 내에서도 내 승소율은 꽤 높았지만 몇년 동안 가족끼리 휴가를 다녀오지 못할 정도로 나는 무심한 남편이었고 매정한 아버지였다. 일을 핑계로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머무르면서 서랍 속에 깊게 감추어둔 술을 마셨다. 적어도 동료들처럼 어린 여자들과 바람은 피지 않는다는 같잖은 합리화를 갖다 붙이면서 말이다. 여름 휴가 내내 얼마나 아내의 몸이 아름다운지 간사하게 속삭이면서 그간의 불성실함을 어줍잖게 용서받고자 하였다.  

경박스러운 낙조가 그대로 내비치는 넓은 창 대신 아내와 나를 둘러 싸고 있는 것은 삐그덕거리는 딱딱한 철제 침대와 여기저기 얼룩이 남은 구겨진 시트, 그리고 밖에서 시간을 재고 있는 노골적으로 아내의 뒷모습을 훑어보던 간수였다. 아내의 몸을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감싸자 움찔했다. 이제서야 나에게 말을 거는 아내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아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조심스레 팔을 쓸어내리자 그제서야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내 가슴으로 살며시 안겨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아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어둠을 틈타 식료품점을 다녀왔겠지. 야채를 흐르는 물에 씻으면서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오랫동안 숨죽이며 울었을 것이다. 이제 내 아이들을 아내의 부모님이 있는 동부로 데려갈 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었다. 밤마다 남자에게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까벌리는 나는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그리고 내 아내고 내 아이들이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을 의도적으로 천천히 아래로 쓸어 내렸다. 아내에게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올 때까지 부드럽게 젖가슴을 문지르고 아랫배를 훑어 내렸다. 아내의 사타구니 아래로 내려가 얼굴을 묻었다.
나는 남자이고, 이 여자는 내 아내이고, 이 여자의 몸에서 또 다른 내 아이를 만들 것이다.


바깥에서 시간이 다 되었다며 간수가 급하게 문을 두드리자 아내는 재빠르게 옷을 꿰어 입었다. 아내의 붉게 달아오른 몸과 얼굴이 채 가시지 않은 흥분인지, 수치심인지, 원망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구니를 움켜준 아내의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남자가 깨지 않도록 슬며시 침대에서 기어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집고 조각난 사진을 이어 붙였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는 시뻘건 열기를 씹듯이 되삼켰다. 낮에 찾아온 아내의 절망처럼 잘게 찢겨진 아내의 가느다란 미소는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들 녀석의 반듯한 이마와 딸아이의 양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이 반토막이 났다.
적어도 지금 아이들 곁에는 아내가 있다. 아직까지는 내 아내와 아이들은 이곳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 오즈에서 보여진 것에 따르면 비쳐는 주로 민사소송을 담당했지요. 왜곡해서 비쳐씨 미안;;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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