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FICATION : Keller Angst
SPOILERS : Season 3#5 U.S. Male, general up to season 3
DISCLAIMERS : Damn, not mine.
"원하는 것이 있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말아, 넌 선택받은 사람이야."
하반신의 통증으로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을 겨우 다잡고 있으면, 그제서야 포만감으로 느슨해진 남자는 허연 뱃가죽을 늘어뜨린채 대단한 충고를 건네주는 것처럼 거들먹거렸다. 세상에, 방금 전까지 남자는 내 등뒤에서 발정난 개처럼 헐떡여 놓고는 새삼 아버지 노릇을 하려 들고 있었다.
"영국 새끼들이 인도를 집어삼킨 것을 가지고 정의롭지 않다고 하지는 않지. 위대한 우리 선조들이 미개한 야만인들을 내몰고 국가를 건설한 것은 우리가 선택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야. 강한 것이 바로 정의야. 꼬맹아, 명심해."
남자와의 섹스는 불편했지만 요령을 터득하고 나자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여자와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자극을 주기도 하였고, 별별 인간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같은 피부색을 가진 남자는 차라리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아버지란 작자는 길게 자란 내 손톱이 거슬린다고 패고, 자신이 말을 하고 있는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는 별놈의 이유를 갖다 붙여 나를 구타했지만 남자가 나에게 손을 대는 이유는 정해져 있었고 시간도 짧았다. 적어도 기껏 구슬린 계집애들이 내 몸의 울긋불긋한 피멍을 발견하고나선 호들갑을 떨며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남자의 무리들과 함께 다니면서는 이 안의 내 엉덩이를 노리는 녀석들의 느물거리는 시선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 머저리들이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이야기들이 역겹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감히 내가 일하는 세차장으로 자동차를 끌고 올 생각을 하다니.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는 껌둥이 녀석들을 쫓아가 머리통을 으깨 놓았지. 꼴에 계집애도 달고 왔는지 옆에서 꽥꽥대는 소리가 어찌나 웃기던지."
남자는 얼간이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창백한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주제 넘는 짓을 하고 다니는 잡종들을 청소하고 정의를 바로 세울 특권이라, 추접한 호모새끼들의 엉덩이에 총부리를 쑤셔 박았다고 영웅담처럼 떠들어대는 그들은 내가 라드너에 온 첫날, 내 엉덩이에 환장하며 달려들었지. 저 얼간이가 뭐라 했더라.
무식하게 거대한 검둥이 녀석에게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 했지.
여기에 오기 전, 내가 찌른 거렁뱅이의 눈이 떠올랐다. 예리한 칼날이 살거죽을 뚫고 내장을 파고드는 감촉과 서서히 빛이 사라져 가는 눈동자는 뜻밖의 감각을 불러 일으켰다. 거렁뱅이에게서 지켜낸 때묻은 담요를 움켜쥔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두려웠던가, 아니면 희열을 느낀 내 자신에게 공포감을 느꼈던가. 비릿한 피 냄새와 거렁뱅이의 지린내가 진동을 하는 뒷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특별한 그 순간을 음미하며 경찰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위대한 순간을 세상도 알아야 했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괴물이었고, 쓸모 없는 쓰레기였다. 앞으로도 자신이 똥인줄도 모르는 얼간이들과 이 시궁창을 전전하며 살아가게 되겠지.
남자와 지내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면 정말로 강한 자는 절대 상대에게 자신의 힘을 노출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영역을 죄어나가면서 불시에 목덜미를 덥썩 무는 것이다.
물론 먹이감이 차라리 숨통을 끊어주기를 바라는 고통을 선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죽음은 자비가 되는 것이다.
열일곱살, 더러운 매트리스에 신음을 삼키면서 남자에게 자비를 베풀 순간을 꿈꾸었다.
"네가 손봐줘야할 녀석이 있어. 너도 아주 재미있을 거야."
남자는 오늘도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악몽으로 번들거리던 남자의 탄탄한 육체가 어른거렸다. 계집애처럼 구석에서 몰래 옹송그리고 앉아 흐느끼던 남자의 울음이 들려왔다. 남자의 엉덩이에 새겨진 스바스티카를 내가 본 것을 알고, 모욕감으로 일그러지던 얼굴은 라드너에서의 첫날을 떠올리게 했다. 죽은 벌레들로 뒤덮힌 새카만 백열 전구와 화끈거리는 통증을 달래주었던 창고의 습기찬 시멘트 바닥이 떠올랐다.
사람의 몸뚱이는 쉽게 굴복당했고, 우습게도 재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영리한 남자 또한 금방 체념했다고 했지.
그러나 망각했으리라 믿었던 봉인된 기억은 어느 순간 방심한 나를 급습했다. 젊고 아름다운 남자들의 육체는 치명적인 촉매제였다. 서서히 빛이 사라져 가던 거렁뱅이의 눈동자도, 열기로 탁해진 유혹적인 눈동자도 우스울 정도로 초라해져 목숨을 구걸했지. 뼈가 부서지는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남자의 얼굴은 벅찬 설레임으로 한동안 나를 잠 못들게 만들었다. 남자의 고통과 분노, 배신감은 오롯이 나로 인한 것이었다. 그 순간만은 내가 절대자였다.
나는 남자를 원했다. 남자가 미련스레 움켜쥐고 있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저 남자를 가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저 남자를 손에 쥐게 되면 성마른 갈급함도 해갈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 남자를 원한다는 소문을 들은 그 남자의 표정이 궁금했다.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얼간이를 바라보던 딱한 눈일까, 아니면 홀로 사냥을 시작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