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They dropped like flakes (Part 3/3)
CLASSIFICATION : Angst
SPOILERS : Season 6, 4 Giveness
DISCLAIMER : In my dreams.
그곳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번잡했다. 도심에서 고립된 그곳은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작년에 전복사고가 난 이후에는 버스도 일주일에 두번 밖에 운행되지 않았다.
차창을 스치는 풍경은 고적했다. 평일 오후인지라 좌석은 한산했다. 세번째 줄의 창가 쪽에 앉은 잔뜩 부푼 머리의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손톱으로 창문을 두드려댔다.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여자의 손톱 끝은 갈라져 들쭉날쭉했다. 화려한 색은 볼썽사납게 불거진 마디와 메마른 손등과 대비되어 여자의 고된 일상을 극대화시켰다. 내가 앉은 자리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은 노파는 버스가 출발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기도문을 외웠다. 버스기사가 틀어놓은 잡음이 이는 라디오와 초조하게 여자의 손톱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도 노파의 간절함을 흔들지는 못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Sweet home Alabama"의 애수띤 곡조는 처량맞았고, 가을 끝자락의 하늘은 서럽도록 파랬다. 그리운 고향이라, 당장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양말이네."
면회실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남자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지난 몇주 동안 재소자들의 의뢰를 처리하면서도 남자를 만난 것은 두세 번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바깥에서 담배 몇 가치를 들여왔는지 1시간 안에 소문이 퍼지는 곳이니 내가 언제, 이곳을 무슨 일로 드나드는지 남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남자의 동선을 알고 있는 나는 남자가 작업장에서 일하는 시간이나, 상담시간을 택해 남자와 되도록이면 마주치는 것을 피해왔다. 출소하고 처음으로 이곳에 돌아왔을 때 검문대를 통과하는 것에 몸이 바짝 얼어붙었던 것만큼 그곳과 한층더 가까운 이곳에 들어오기에는 아직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내가 가져온 양말을 신기위해 신발을 벗는 간단한 동작마저 남자가 하면 쓸데없이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이 남자는 어떤 사소한 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으니 절대로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내가 출소한지 채 한달이 못되는 시간은 남자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었던 수개월보다 더 많은 간격을 벌려 놓았다. 남자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손끝까지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던 별리의 순간이 수십년 전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남자의 손목과 발목을 무겁게 짓누르던 쇠사슬은 감당할 수 없는 채무였지만, 남자를 사형수에서 빼내는 것으로 빚은 갚은 거였다. 남자의 잿빛 죄수복은 거대하게만 보였던 남자를 초라하게 보이게 만들었고 꺼림칙하기만 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며 묵직함을 담고 쳐다보던 여자의 눈이 떠올랐다.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하는 나대신 남자는 시덥지 않은 질문을 던졌고 그간 남자를 피해 왔다는 죄책감과 공간이 벌려놓은 어색함을 풀지 못한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대답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나 아이들에 관한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내가 금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남자의 다소 어처구니 없는 소유욕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아이들은 절대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이곳의 그 누구도 내 아이들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다음 질문을 듣고 안심했다. 남자가 적장 알고 싶은 것은 그거였다.
"그 여자와 잤어."
솔직하게라, 진실을 요구하는 남자의 눈은 여느 때보다 바짝 경계되어 있었고, 나는 도저히 남자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내 답변이 남자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여자와의 관계를 속이는 것은 남자에게도 그리고 우리들이 나누었던 그 무엇에도 모독이었다. 그렇다고 진실이 남자가 감당해야 할 상처를 덜어주지는 않았다. 찰나 남자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듯 싶었으나 곧 허세로 감추었다.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쌌던 시간만큼 사소한 동작에도 나는 남자를 읽을 수 있었다. 남자는 나약함을 종종 실체없는 허세로 위장했고, 그것은 내가 남자를 동정하고 또한 가장 사랑하는 이유였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남자는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두렵고 절박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두려움이라, 남자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순간, 내 어깨를 생명줄처럼 절박하게 끌어안던 어느 밤이 떠올랐다. 뭐라고 했더라, 남자는 빛이 없는 어둠이 두렵다고 했던가.
"내가 네 아버지를 죽인 그 녀석을 죽였어."
이곳에서 시작된, 나에게서 비롯된 모든 악연을 끊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남자의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다 갚았다고 안심했다. 그러나 남자의 행동은 언제나 내 예상을 벗어났다. 어떻게 해도 이 남자를,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는 형체를 알 수 없건만, 진득한 감정의 잔해는 우둔하게도 남자를 믿고 싶어 했다.
따순 여자의 연한 목덜미와 내 절망을 받아내던 작고 동그란 어깨가 사무쳤다.
"너를 사랑해,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
멀리서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오늘 새벽녘부터 끈질기게 따라붙던 한기는 귀향을 알리는 전조였던 것이다.
그리운 고향이라,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