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They dropped like flakes (Part 2/3)

TITLE : They dropped like flakes (Part 2/3)
CLASSIFICATION : Angst
SPOILERS : Season 6, 4 Giveness
DISCLAIMER : In my dreams.


"이 아이가 당신의 용기를 물려 받았으면 좋겠어."

보니가 임신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보니를 내 곁에 머무르게 할 수만 있다면 치수가 맞지 않은 촌스러운 양복을 입고 지루한 결혼식을 몇번이고 치를 수 있지만, 아이라니. 도대체 언제였을까.

보니와의 섹스는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결혼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짜릿한 열정 이후 구질구질한 아침을 함께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는 썩어들어가는 시멘트로 인해 여기저기 검푸른 곰팡이가 피어있고, 위층 사람이 오줌을 갈기는지 똥을 싸는지 알 수 있는 낡고 허술한 아파트가 아닌 집을 원했다. 뒤룩뒤룩 기름진 살집의 탐욕스러운 관리인의 시선과 버르장머리 없는 조무래기들의 보니를 향한 놀림이 없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집은 성욕과 식욕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보니가 원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녀석이라며 이유없이 구타를 해대던 누군가와 내가 지닌 사악한 기운을 쫓아야 한다며 하루에 수십번 같은 기도문을 조금의 간격도 달라짐이 없이 외워대던 네번째 양어머니에게 보니와의  결혼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나를 원한다는 것을 소리높여 외치고 싶었다. 내 동정을 해치워준 코끝이 붉고, 신경질적으로 도수 높은 안경을 밀어올리던 7학년의 화학 선생은 분명히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보니는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일하는 마트로 내가 데리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거대한 몸집을 보고 힐끔거리는 남들의 시선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래서 주의를 끄는 것을 상당히 꺼려했다. 더욱이 타인들 앞에서의 애정행위는 그녀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의 그럴듯한 외모는 보니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시했다.

보니는 여느 날보다 들떠 있었다. 그녀는 평상시의 길이 아닌 한적한 주택가로 나를 이끌고 갔다. 3개월의 결혼 생활에 보니도 이제 색다른 것을 원하나 순간 흥미가 생겼다. 그러나 그녀가 데려간 곳은 회색의 슬레이트 지붕칠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고, 손질되지 않은 잔디가 지저분하게 자라있는 건물이었다.

"오늘 가게에 부동산 중개인이 왔었어. 그 여자 말이 이 집이 싸게 나왔다는 거야. 지금 저축한 돈에서 조금만 모으면 이 집을 계약할 수 있어."

한적한 주택가에서도 한참을 떨어진 그 집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음침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보니는 이 집을 길들이기를 원했다. 처음 만난 나를 전혀 경계하지 않고 데려가 나를 그녀의 친절과 배려에 중독시켜 버린 것처럼 말이다.

별 내세울 것이 없는 늙은 남자들이 지나간 젊은 시절을 무용담처럼 지겹게 되풀이 하는 후줄근한 선술집은 드나드는 사람들처럼 음악도, 술도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었다. 군데군데 타일이 깨진 화장실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섹스는 그나마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탄력없이 늘어진 살집과 술과 담배냄새가 섞인 역겨운 입냄새에 빨리 끝내고 싶어 문을 잠그지 않았고, 마침 들어온 사장은 뜻밖에 구경하게 된 격렬한 섹스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상대가 남자였다는 것인지 머저리같이 입만 벌리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당한 나는 남자의 술값을 대신 치르고 나왔다. 세차장의 여사장은 근방에서 최고로 꼽히는 매끈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쪽의 청력을 잃어가기 시작하는 여사장의 늙은 남편은 동시에 시력도 잃어가는 듯 했다. 작업장 뒤쪽의 공간은 그녀와의 아슬아슬한 밀회공간이 되었고 세차하는 자동차 대수보다 그녀를 절정으로 이끄는 횟수가 더 많았다. 그러나 아직 총기는 잃지 않았는지 여자의 부정을 알아챈 남편은 나를 향해 니퍼를 던졌고 나는 겨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채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연이어 해고를 당하는 나로 인해 보니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었다. 해고의 이유는 알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고, 내가 손에 대지 않는 담배 냄새와 그녀가 사용하지 않는 싸구려 향수냄새를 묻어와도 언급하지 않았다. 절대 익숙해질 리 없는 기름냄새를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에 아파트에 돌아오니 보니가 세탁바구니의 내 셔츠를 집어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당신이 밖에서 누구와 어떤 짓을 하든지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아니,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당신의 문제야."

젠장, 어제 저 셔츠로 뒤처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보니는 지금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동의를 깨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르든지 보니는 나를 원하고 사랑해야 했다.

"알아, 당신이 나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말이야. 그깟 종이쪼가리가 당신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러쿵 저러쿵 수군대는 얼간이들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런데 어리석게도 말이야, 그 집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이... .... 우리 사이가 더 확실해 질거라고 믿었어."

아마 그날 이었을 것이다. 보니의 아이가 생긴 것은.

우리의 약속을 배신한 보니에 대한 분노보다 그녀의 절망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 더 컸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할 수 있는 유일한 사과를 했다. 두달 후 보니는 임신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려왔다.

용기라니, 나는 보니의 아이가 나의 어떤 점도 닮지 않기를 바랐다.

몇년 동안 팔릴 것 같지 않은 집의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니는 무리를 했고 아이를 유산했다.
이번에는 어떤 위로조차 할 수 없었고 보니는 다음 날에도 출근을 했다. 그날 저녁 보니는 이혼을 요구했다.

우리의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생겼을까.

그의 아이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는 나에게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아내 이야기를 꺼낸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좀처럼 하지 않았다. 가끔 몰래 가족 사진을 들여본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번도 내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만약 보니와 나의 아이가 태어나 자랐다면 해리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번에 그가 면회오면 해리 이야기를 물어봐야겠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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