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Taking Chance (2009) : Plausible Deniability


촘스키는 이라크전이 왜 발발했을까 라는 질문에 미국은 태생적으로 겁이 많은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살육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적으로 간주하고 언제 공격받을지 몰라서 지레 겁먹고 막무가내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석유점유권을 둘러싼 열강들과 부시가 원흉이고, 교묘한 프로파간다를 간파하지 못하고 휩쓸린 미국인들이 어리석을 뿐이다.


<Taking Chance>라는 제목만 보고 반어적인 의미가 있는가 제법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난감했다. 교묘하게 정체를 감춘 팍스아메리카니즘의 그럴듯한 변명을 보고 있자니 느끼해서 원.
내용은 스트로블 대령이 이라크에서 전사한 챈스 펠프스를 고향으로 운구하는 여정이다. 제목은 내가 추측했던 의미가 아니라 이름이었다. 그것도 펠프스가 아닌 친근한 챈스다. 제길,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죽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예우의 대상이 스무살 남짓 청년 챈스 펠프스가 아닌 이라크 참전 군인이라는 것이다. 검시소의 직원들, 비행기 승무원도 일반 시민들도 펠프스에 죽음에 대해 극도로 예를 갖추고, 비장하게 마지막에는 장렬하게 전사한 펠프스가 실은 평범한 이웃집 청년이었음을 슬라이드로 보여준다. 스트로블 대령을 억누르고 있던 그 죄책감은 이라크전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다른 전우들이 적진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때 자신은 편안하게 가족들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도 끝까지 어리석게 반전을 기대한 내가 멍청하다. 와이오밍주의 평온한 경관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떠올리라는 것인가. 당신들이 파괴한 이라크민들의 삶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당신들이 그토록 엄숙하게 추모하는 젊은이가 그곳으로 왜 보내졌고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해야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유투브 댓글 봤다가 옘병, 그러면 그렇지. 몇몇 이라크전을 꺼낸 글에 바로 이 영화는 '명예와 존경'에 대한 것이라고 반박하는 무수한 댓글을 보고 기가 찼다.

문제는 죽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그 죽음이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비겁하게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애도하는 친근한 청년의 죽음은 바로 그들의 무관심과 아둔함으로 인한 것이다.

느끼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동안 모셔뒀던 <Generation Kill>을 봤다. 이라크전이 명분없는 살육이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면 그나마 보았던 것을 서술하는 것이 낫다. 전쟁에서 희열을 느끼는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변명이 차라리 그럴듯 하다. 제발 이런 데서 염병할 쿨한 척 하지 말아라. 그것은 역사를 난도질할 미래 그들의 몫이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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