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켈러 : When it comes to love we all have patterns

Keller : Jesus was divine and human simultaneously, right?
Did the divine part control his sexual appetites? And if so, what chance have I got?
I'm not divine, far from it. I mean, all my life, anytime I've gotten the urge, I've stuck my cock into any
cavity that was open and available. That's what's led me to this point in time, this precipice of death.
If I'd have been celibate, do you think I'd have been happier?

예수는 신성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었잖아요. 그렇죠?
신성한 존재였다는 것이 그의 성적 취향을 통제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난 신성하지 않아요.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어느 때이건 충동이 생기면
난 열려 있는 가능한 구멍에는 내 물건을 쑤셔 넣었어요. 그게 지금 나를 이 지점에 이르게 한 것이예요.
이 죽음의 순간이요. 만약 내가 금욕적이었다면 더 행복했을까요?


Sister Pete : We fight out natures, Chris.

우리는 욕구와 맞서 싸우지.


Keller : Why? God gives us natures, why? What, for us to fight them?

왜요? 신은 우리에게 욕구를 주었어요. 왜, 무엇을 위해서 그것과 싸우는 건가요?


- Oz 5#7, Good Intentions


피트 수녀와의 상담에서 켈러는 질문한다. "신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피트 수녀와의 대화 장면은 켈러라는 복잡미묘한 인물을 한층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회이다. 총상으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켈러는 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과거의 행동으로 인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으로 절박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회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포감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기존의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는 않는다. 신이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간절하게 원하지만 자신의 본성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리고 이것은 체념에 가깝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자신은 가치없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기 혐오감이 짙게 깔려 있다. 
 
다시 켈러는 질문한다. "내가 그 본성에 맞서 싸웠다면 사형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켈러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러나 도덕적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혐오로 이어진다.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도 도덕적 금기를 깼다는 자기 혐오감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켈러는 상충되는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다. 라드너 교도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쉴링어와의 섹스를 이용하면서도 남자들과의 섹스에 강한 혐오감을 지닌다. 쉴링어와의 관계는 생존본능이라는 점에서 설명이 가능하지만 이후의 호모포비아 성향은 분노와 살인으로 분출된다는 점에서 켈러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에 대해서 궁금점을 일게 만든다.
기존의 사회적-종교적 규범에 제약받지 않는 이탈자에 가깝지만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즈에서 동성애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감옥 안에서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혐의가 짙다. 오즈의 다양한 집단군에서도 게이들은 기이한 복장과 화장을 일삼는 변방의 무리이다. 프랙과는 다른 성격이라는 차이를 두면서도 이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반영한다. 그리고 동성애 또한 다양한 사랑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며 도덕적-종교적 잣대로 재단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비쳐와 켈러의 관계는 감옥 안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절망에 빠진 두 사람이 필연적으로 찾게 되는 인간적 위안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비쳐는 켈러의 갈망의 '대상'이다. 그 이유가 오즈에서 얻고자 했던 위안이었든, 일생동안 희구하였던 무조건적인 사랑이든 켈러의 자기 모순이 해갈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모순은 뒤틀린 사랑으로 표현된다. 켈러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상처는 외면하고 이것은 비쳐를 다시 오즈로 돌아 오도록 만들면서 결국 두 사람을 파국에 이르도록 만든다. 쉽사리 풀어내기 어려운 이 모순으로 켈러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하면서 그런 스스로를 못견뎌 하고, 구원을 원하면서도 스스로의 변화 가능성을 포기한다.

켈러는 자신을 죽음의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 것이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켈러는 자신의 행동에 전혀 죄책감을 지니지 않는다. 범죄와 무분별한 섹스는 일탈일 뿐이며, 오즈는 무료해진 삶의 돌파구였을 뿐이다. 그리고 켈러는 그들이 정해 놓은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고통받게 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 것이다. 켈러는 피트 수녀에게 역으로 질문하는 방식으로 그 완전무결한 세계에 반박한다. 그래,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당신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sexual predator" 섹스는 켈러의 자신감을 상징한다. 섹스는 켈러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절대자가 되기 위한 무기이며, 무조건적인 애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들도 화학적 반응이 소진된 이후의 공허함을 결코 채워줄 수 없었고, 섹스를 제외하고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이것은 결코 자신이 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아" 이것은 비쳐에게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냐는 절박한 애원이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비쳐는 아들의 살인자로 자신을 의심하지만 그래도 질문한다. 그래, 너라면 어린 아이와 같은 애정을 갈구하는 나를 사랑하고 구원해줄 수 있느냐고 말이다.

비쳐를 오즈로 다시 돌아 오도록 만든 켈러에게 피트 수녀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피트 수녀에게 켈러의 사랑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기만하는 구실이며 변명일 뿐이다.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어요" 켈러가 비쳐를 자신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만든 것은 피트 수녀가 남편의 죽음 이후 수녀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반박한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운명이며 또한 증오로도 결코 비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에 묻힌 피로도 사랑을 얻지 못한 켈러는 절박하게 반문한다. 왜 자신의 사랑으로도 그 절대적인 공포와 절망 속에서 자신을 구해 줄 수 없느냐고 말이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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