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토바이어스 비쳐 : L'tranger

비쳐는 오즈에서 가장 낯선 인물이다. 오즈에 오기 전, 중산층의 성공적인 변호사였다는 배경은 그가 지성과 도덕성을 지녔고 오즈 안의 다른 인물들에 비해 사회-윤리적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사회규범의 관습적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쉴링어에게 복수를 하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하고, 쉴링어를 용서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오즈의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인간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구원하려는 것이다. 쉴링어와 처음 화해를 시도하면서 칼에 찔리고 나서도 쉴링어의 또 다른 아들, 행크를 찾아 주려고 했던 것은 비쳐가 지닌 도덕성 때문이었다. 자신의 선한 의도가 쉴링어에게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가 지닌 '윤리 의식' 때문에 다시 화해를 시도한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되고 난 초기에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자유인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나는 바닷가로 달려가서 물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발바닥 밑에서 물결이 부서지는 소리, 물속에 몸을 깊이 담글 때 느끼는 해방감 등이 떠오를 때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감방의 벽이 얼마나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는가를 느끼곤 했다."

- 알베르 까뮈, <이방인>


<이방인>의 뫼르소는 살인죄가 아닌,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 받는다. 뫼르소는 사회의 가치체계, 주변인들이 기대하는 행동양식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도소에 갇혀 재판을 받고,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된다. 뫼르소는 종교와 윤리, 사회규범에 구속받지 않는다. 본능을 따르고 순간에 충실한 그의 솔직함에 주변 사람들은 경계하고 억압하고자 한다. <오즈>의 비쳐는 사회-관습적인 인물로 법과 정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비쳐가 고통을 받은 이유는 그가 오즈의 논리가 아닌 도덕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쉴링어가 기대한 것은 복수였지만 비쳐는 선의로 대응했기 때문에 가족의 희생을 가져온 것이다. 비쳐는 이슬람에 관심을 나타내지만 종교적인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감독교회신도의 집안에서 성장했고, 앤디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슬람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죄의식을 덜고자 했던 것 뿐이다. 비쳐는 신이나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적인 산물일 뿐이고, 이것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이 구속받는 모순을 잘 알고 있었다.


뫼르소는 자신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자신을 사형으로 몰아가기 위해 사실들이 재구성되어 가고 살인혐의가 아닌 자신의 도덕성, 사회가치체계에 대한 무관심과 반항적인 태도가 재판받는 것을 제 3자인 양 지켜본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에 냉담하고 건조한 태도를 지녔기 때문에 교도소에 와서도 다소 불편할 뿐, 곧 일상에 권태로움을 느끼게 된다. 비쳐가 오즈에서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은 그가 지닌 날카로운 관찰력 때문이다. 비쳐가 지닌 이성과 도덕성은 오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때문에 정의를 주장하는 사이드의 모순을 알아 채고, 다른 이들을 쉽게 속이는 라이언의 이기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쉴링어와 사이드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다.


뫼르소의 객관성은 주변의 모든 상황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냉담하고 초월적이지만, 비쳐는 자신 또한 오즈 안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현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비판적-주체적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과 스스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묻고 회의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고 냉철하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애도해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체계에 부응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서 주변인들에게 질타받는다. 반면, 비쳐는 알콜에 중독되면서도 외부에서 자신에게 기대하는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에 좌절하고 혐오감을 느낀다. 외부의 객관적인 가치체계를 습득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부조화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쉴링어의 프랙으로 지내면서 존엄성을 훼손 당하면서도 자신의 무절제함과 경솔함으로 어린 소녀를 죽였다는 죄책감, 그것으로 인해 피해자의 가족은 물론 자신의 가족에게 가져온 고통과 슬픔에 책임을 지고자 스스로를 가혹하게 벌주고 방치한다. 자신의 어리석은 분노와 적개심으로 죄 없는 어린 아들의 목숨을 희생시켰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학하기도 한다.


비쳐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도피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만회하고자 노력한다.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자신이 죽인 피해자의 부모를 찾아 속죄하고자 한다. 단 한순간의 실수였을 뿐인데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원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로 인해 치루어야 하는 마땅한 댓가이고 그렇지만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속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켈러를 만나기 위해 아담이 어떤 일을 겪을지 알면서도 쉴링어의 손에 넘기지만, 자신 또한 증오하고 적대시 하던 쉴링어와 같은 냉혈한 가해자가 되었음을 깨닫고 비록 뒤늦었지만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6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천국, 정의, 진실… 이제 난 더 이상 아무 것도 확신 할 수 없어.
내가 믿는 단 한가지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거야. 너와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사람들이 말이야. 그들의 생명은 소중해. 그리고 모든 생명들의 죽음, 심지어 오즈에서도 그 상실감은 똑같아."
 
- Oz 6#8, Exeunt Omens, Beecher


뫼르소는 사형을 앞두고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신부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모순된 상황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뫼르소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삶과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관계와 인위적인 틀에서 자유롭게 해방된다. 비쳐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어렵게 다시 얻은 자유를 잃은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믿어 왔던 모든 가치체계가 무너진 혼돈스러운 상황에서도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포용하고, 앞으로 다시 굳건하게 나아간다.


비쳐와 뫼르소, 이 둘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그들에게는 낯선 인물들이었지만 인생에, 스스로에게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열정적인 이방인들이었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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