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em dimittite spem, o vos intrantes :: 사이드와 맥매너스 : Hope Is a Waking Dream

감옥이 본래 목적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자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맥매너스는 엠 시티를 만든다.
오즈 내의 다른 구역보다 재소자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혜택이 주어지는 곳이지만, 밖에서 훤히 안이 들여다 보이는 감방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생활을 철저하게 박탈한다는 점에서 더 옭조이게 한다.
처벌이 구원으로 대치되는 곳, 그곳이 엠 시티이다. 그리고 맥매너스는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이드는 정치적인 이유로 창고를 폭발시킨 후 오즈에 수감된다. 사이드가 엠시티에 온 순간부터 맥매너스와 글린 소장은 그의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 때문에 긴장한다. 사이드는 코란의 가르침으로 오즈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이것은 맥매너스와의 주도권 다툼으로 이어진다. 양말 한짝을 얻기 위해 서슴치 않고 사람을 죽이는 정글에서 사이드는 신을 이야기 하고, 사랑과 포용의 가르침을 전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폭력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포용하고자 하는 사이드의 신념은 킨을 감화시킨다. 그러나 힘의 역학관계가 정밀하게 얽힌 오즈에서 킨의 변화는 결국 죽음을 초래한다. 사이드가 실천하고자 하는 비폭력, 사랑은 고귀한 가치이지만 오즈에서는 예상 밖의 비극을 가져온다. 사형제도와 사법제도의 불합리함에 분노하지만 오즈 안에 갇힌 자신 또한 죄수이고, 뾰족한 대안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킨이 자신의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사이드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신과 인생, 삶과 죽음을 가르치는 이맘이지만 그 또한 죽음을 두려워 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사이드는 오즈의 험악해져 가는 흐름을 이용하여 폭동을 야기하고, 맥매너스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사이드의 사회 부정의에 대한 분노는 설득력이 있다. 오즈 안의 재소자들은 사회-문화적 결핍 때문에 감옥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고 그 책임은 개인이 아닌 사회가 물어야 한다는 말은 맥매너스도 반론할 수 없게 만든다. 맥매너스는 무고한 희생을 막고자 하지만, 사이드는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폭동이 가져오는 상징성을 사회에 인식시킬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사이드에게 폭동은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다. 폭동 중에도 민주적인 의회를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 사이드를 다른 집단의 대표들은 조롱한다. 사이드는 폭동이 무력으로 진압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수개월 후에 엠 시티가 다시 열리고 맥매너스는 새로운 계획들로 희망에 부풀어 있다. 오즈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보다 높은 이상을 지닌 두 사람이지만 그 방향은 상이하다. 한계가 명확한 체제 안에서도 맥매너스는 해결점을 모색하고자 하고, 사이드는 이 체제를 부정하고 파괴하고자 한다. 희박한 가능성에도 계속해서 매달리는 맥매너스이지만 사이드는 여기에 냉소적이다. 여기에서 사이드의 모순점이 보인다. 사이드는 자신의 명성을 의식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파급될 영향력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행동한다. 엠 시티에서 각 집단의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를 구성한 맥매너스의 계획은 사이드의 신념과 일치하지만 주도권의 우위를 차지하고자 참여하지 않는다.


크레이머 사건에 대한 사이드의 태도에서 그의 모순은 잘 드러난다. 동성애를 경멸하는 사이드가 그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것은 단순히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전의 힐 재판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시도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치주의자인 쉴링어를 '흑인'이 변호하겠다고 나선 것과 같은 이유에서, '무슬림'이면서 동성애자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이드가 믿는 정의 실현의 실천방법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역동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사이드의 시각이 단순하고 이론적이라는 한계가 드러난다.
이념, 명분에 대한 집착은 폭동 소송을 이끄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단순히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 보상을 받는 차원이 아닌, 다른 싸움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기만하기도 한다.


포엣의 시집출간과 가석방은 맥매너스와 사이드, 두 사람이 협력하여 일구어 낸 최초의 성공이다. 그렇지만 마약을 끊지 못한 포엣은 결국 다시 오즈로 돌아오게 된다. 이 일로 인한 사이드의 좌절감은 상당하다. 사이드는 킨의 사형, 폭동 중에 희생 당한 목숨들, 패소로 인한 힐의 절망에 대해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고, 이 시점에서 포엣의 성공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망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오즈에서 자신의 노력들은 계속해서 실패할 뿐이고,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지만 자신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죄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상과 현실의 단단한 벽을 또다시 절감하게 된다. 불가능한 곳에서 꿈을 꾸는 두 사람이기에 그 좌절감 또한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맥매너스이다. 그 또한 자유를 갈망하는 죄수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사이드는 데블린 주지사의 특별 사면을 거부하고, 맥매너스는 이를 지지해 준다.



패트리샤와의 인연은 사이드에게 또다른 전환점을 가져온다.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이맘으로서 홀로 겪어야 하는 외로움에 지친 사이드에게 그녀의 존재는 돌파구와 같다. 백인 여성을 사랑한다는 것에 무슬림 무리들 뿐만 아니라 엠 시티 내의 African-American 들은 분노한다. 사이드가 패트리샤를 사랑한 것은 그녀가 백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것은 자신이 흑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보상심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이드는 흑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편견과 부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피부색'은 그에게 분노 대상이 아니다. 피부색을 넘어 모든 차별과 부당함을 가져오는 사회와 사법체계를 비판한다. 그러나 피부색은 오즈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잣대이자 보호막이고, 사이드의 백인 여성에 대한 사랑은 그에게 약점이 된다. 모든 것을 박탈 당한 감옥에서 자신의 감정마저 부정 당하는 사이드는 그 모든 것에 지친다.


고립된 상황에서 백인인 비쳐와의 인연은 결국에는 이맘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계속된 실패로 인한 좌절감, 자신의 모든 노력들이 '인종주의'라는 편견에 갇혀 폄하되자 무력감에 빠진 사이드에게 비쳐와의 우정은 커다란 힘이 된다. 비쳐는 코란과 사이드의 존재로 오즈에서 위안을 얻는다. 살아 남기 위해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 다닐 뿐인 오즈에서 친구는 불가능한 것이고, 때문에 사이드와 비쳐와의 우정은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비쳐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드의 모순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지적-영적으로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용서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점에서 이 둘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이드의  조언으로 쉴링어와 화해하려고 했고 이로 인해 아들의 목숨을 잃었지만, 절대로 사이드를 원망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어떤 댓가를 치루든지 스스로와 상대방을 용서하고 감싸 안으려는 사이드의 신념은 비쳐가 인간으로서 온전하게 버티게 만드는 등대였다.


비쳐와 사이드는 엠 시티에서 유일한 지식인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은 조정래 <태백산맥>의 김범우, 염상진을 일정 부분에서 떠오르게 한다. 주변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회의적인 지식인이었던 김범우는 비쳐와 교차된다. 물론 비쳐가 김범우나 사이드처럼 현실에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일생 동안 믿고 수호해 왔던 사법 체계에 의해 감옥으로 오게 되었지만 법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냉철한 비판의식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고뇌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김범우의 모습에서 비쳐가 연상되었다. 신분과 계급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투철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혁명가 염상진은 사이드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사이드는 사회비판가이면서 또한 종교인이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대항하는 과정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종교인으로서 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고 자기 모순에 괴로워 하던 지식인 사이드의 모습이 더 흥미로웠다. 오즈에 들어온 초기의 사이드의 모습은 종교인이 아닌 투사의 모습에 가까웠다. 오즈 밖의 세상에서도 사이드의 신념은 급진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낮았지만 전혀 다른 논리가 적용되는 오즈 내에서 더 힘들다. 사이드는 오즈의 다양한 군상들과 뒤섞이게 되면서 그 오만함과 우월의식을 무너뜨리고 점차 성숙하게 된다.


 

아데비시와  얽히면서 사이드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같은 African-American이었기 때문에 아데비시의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는 생활은 사이드에게 더욱 참을 수 없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이 두 사람은 인간에게 모두 내재되어 있는 이성과 본능을 대조적으로 극대화시켜 보여주고, 상대의 숨겨져 있는 본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사이드는 아데비시의 동물적인 본능을 계속해서 억제하려고 하고, 아데비시는 교화가 아니라 자신이 동경하는 사이드가 자신 본연의 모습을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평생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이성의 논리에 살아온 사이드는 아데비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힘들게 쌓아온 모든 가면들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아데비시의 죽음은 아데비시에게는 자유를 향한 해방과도 같았지만 사이드는 자신이 억제하고 외면하고자 했던 증오와 광기를 발견하고 괴로워 한다. 이맘으로서 영적 여행은 스스로 이끌고, 또한 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이드였지만 아데비시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화해하기까지 오랜시간 고통과 맞서 싸워야 했다.


맥매너스와 함께 힐의 자서전을 출판하기 위한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하지만 종말론자인 이직의 총에 살해 당한다. 아리프에게 자신을 죽인 이직을 해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자신이 계속해서 강조해 온 '용서'를 마지막까지 실천한다. 자신만만 하고 희망에 부푼 모습으로, 그렇지만 오만한 꺼풀을 벗겨내고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무슬림 형제들에게 연설을 하던 사이드가 강하게 인상에 남아서 바로 직후 그의 죽음은 무척 안타까웠다. 어쩌면 그의 죽음 또한 젊은 날의 오만함에 대한 댓가였지만,  그 시기가 절묘했다.

Posted by 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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